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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변화, 시간에 대한 이야기 - 책 인생수업 중에서

by 법률정보 지식 블로그 관리자 2017.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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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p 134~

 


시간은 쓸모 있는 측정 수단이지만, 우리가 부여하는 만큼의 가치만을 지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찰자에 좌우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시간 57분의 경험이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의 시간이 다른 사람의 시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초, 분, 시간, 일, 주, 월, 년이라는 인위적인 구분이 시간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면,

각자 자신의 시간을 다르게 경험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시간의 가치가 개인적인 인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변화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상황에 작별을 고하고, 새롭고 낯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 상황의 낯설음이나 익숙함이 아니라, 그 중간에 존재하는 시간입니다.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곧 자유입니다.

 


그들의 감정은 현재 그들에게 도착하는 우편물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우편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는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봅니다

어제의 내가 반드시 지금의 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크나큰 자유가 있습니다.

그때 더 이상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살지 않으면, 행복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샌가 미래에 의존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미래만 바라보며 살고, 또 어떤 이는 미래를 꿈꾸며,

또 다른 이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이 모든 접근은 현재를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시간이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면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

 

시간 속에서 살고 숨쉬고 있는 프랭크로서는 마거릿을 다시 보려면

5년, 10년, 아니 20년이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가게 될 곳에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면, 그녀가 도착한 1초 후에 그가 도착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시간은 죽은 자보다 살아있는 자에게 더 긴 것입니다.

 


베토벤은 '겨우' 57세를 살았으나, 그가 남긴 업적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잔 다르크는 20세도 안되어 죽었지만, 그녀는 오늘 날까지 기억되며 추앙받고 있습니다.

(...) 이런 삶을 과연 미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이 순간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도전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지금 이 순간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것...

미래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때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이 신성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죽음과 마주했을 때, 난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런 깨달음을 갖고 모든 도전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도.

비로소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더 이상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 내가 누구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내게 다가오는 기회들을 붙잡았어요.

 


만일 우리가 기회를 붙잡고 두려움 속으로 뛰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나아가 꿈을 추구하고 자신의 소망을 따른다면?

자유롭게 사랑하고 관계 속에서 완성을 이룬다면?

그런 곳은 어떤 세상일까요?

아마 두려움이 없는 세상일 것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삶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지 않을 때 더 많은 일들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내부와 외부에는 새로운 세상이, 훨씬 두려움 없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 세상은 우리가 발견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두려움은 가장 원초적인 단계에서는 우리를 지켜 주는 경고 체계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 위험이 없는 곳에서도 두려움을 갖기 쉽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만들어진 것이며 사실이 아닙니다.

진짜처럼 느껴지지만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습니다.

 


두려움fear이란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 False Evidence Appearing Real'의 약자입니다.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미래의 두려움의 원인이 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은 걱정과 두려움의 전조 없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가진 두려움은 죽음을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가로막습니다.

 

 

 

아이는 너무 오래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는 미래를 볼 수 없었습니다. (폭력적인 부모)

우리 모두는 이 아이와 같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자란 우리는 미래에도 두려움만 볼 뿐입니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만일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꿈을 추구한다면, 당신의 삶은 틀림없이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얻는 배움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최악의 두려움과 맞서게 합니다.

그것은 가능한 또 다른 삶을 보여 주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남은 두려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두려움이 사라질 무렵이면, 우리는 우리가 꿈꾸어온 것들을 실천하기엔 너무 늙었거나

병에 거려 있을 것입니다.

숨겨 둔 열정을 펼치거나, 자신에게 진짜 맞는 일을 찾거나, 원하는 사람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나이가 들고 병에 걸립니다.

만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들을 했다면 어느 날 병에 걸리고 나이가 든다 해도 후회로 가득 차지는 않을 것입니다.

 


꿈꾸는 일들을 아직 행동에 옮길 수 있을 때, 두려움을 이겨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다른 감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의 감정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은 오직 두 가지뿐입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사랑으로부터 나오며,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사랑으로부터는 행복, 만족, 평화, 기쁨이, 두려움으로부터는 분노, 미움, 걱정 그리고 죄의식이 나옵니다.

 


사실은 사랑 또는 두려움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두려움이 있는 곳에 사랑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차지할 자리는 없습니다.

 


둘 중 어느 쪽 편에 설 것인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적극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선택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 안에서 두려움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순간은 우리에게 사랑과 두려움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권한을 줍니다.

(...) 힘든 상황에서는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사랑을 선택했다고 해서 다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는 건 아닙니다.

 


영혼을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려움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에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두려움들은 과거나 미래 중 어느 하나와 관련 되어 있습니다.

사랑만이 현재의 감정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며, 사랑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감정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감정은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항상 과거에 일어난 어떤 경험이나 일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여겨지는

어떤 일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산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목표입니다.

 


자신을 사랑으로 채울 때, 두려움을 걷어 낼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잘못된 것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똑똑하셨고, 재능도 있었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셨어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셨지만, 다만 절대 시도하지 않으셨죠.

그러면서 늘, '우리 집안은 일이 잘 풀린 적이 없어.'하고 말씀하셨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어요. 난 언제나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그릴 만한 실력이 없다고."

이 젊은이의 문제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명함을 디자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긴 나머지 꿈을 이루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지금 당장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묻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림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두려움을 떨쳐 내지 못하셨지만 난 다를 거예요."

이제 조슈아는 다른 삶을 살 기회, 두려움 없는 삶을 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화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단지 그림 그리는 일을 즐기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는 두려워하면서 삶을 살아가지 않을 것이고, 두려움에 차서 죽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입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더 대담해집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종착점에 있는 환자들이 곧잘, 자신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무한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지혜로 바꿔야 합니다.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야 합니다.

당신의 두려움은 도전 받지 않을 때에만 힘을 갖습니다.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사랑과 친절의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때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갖는가에 따라 두려움이 커지거나 사랑의 마음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은 더 많은 사랑을 불러옵니다.

 


진정한 자유를 가장 두려운 일들을 대담하게 행할 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붙들리지 않고 크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당신은 삶을 잃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게 됩니다.

두려움, 걱정,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겉으로만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당신 삶의 변함없는 일부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을 걷어 버리거나 이겨 내야 역설적이게도 삶의 가장 안전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망설임 없이 사랑하고, 솔직하게 마음속 말을 하고, 자기 방어를 하지 않고도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일단 두려움을 뛰어넘으면 새로운 삶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두려움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헬렌켈러는 말했습니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두려움이 주는 이런 배움들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경이롭고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우리가 꿈꾸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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